• 제44회 미술품경매
크게보기

Lot. 012

해사 海史 이준 李儁 외 1859-1907
합작서화첩 合作書畵帖
종이에 먹 외
14.8x17.2cm (13점)
첩/추정 KRW 3,000,000-6,000,000

이 첩은 해사 이준海史 李儁이 일본 망명 시절 교유하던 여러 일본 서화가들과 함께 글과 그림을 남긴 합작서화첩이다.

이준은 대한제국기 법관이자 독립운동가로, 본명은 이선재李璿在이며 해사海史·일성一醒·청하靑霞 등의 호를 사용하였다. 1895년 법관양성소를 졸업한 뒤 한성재판소 검사시보를 지냈으며, 1896년 아관파천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독립협회와 대한자강회 등 계몽운동에 참여하였고, 1907년에는 고종의 특사로 이상설李相卨·이위종李瑋鍾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되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하였다.

柳眼梅腮動惠風 復看萬里物華新
共歡四海升平日 人在祥雲瑞靄中
버들눈과 매화의 고운 빛에 따스한 바람이 일고, 다시 보니 만 리 온 세상의 경물이 새롭네.
사해가 태평한 날을 함께 기뻐하니, 사람은 상서로운 구름과 서기 어린 안개 속에 있네.

이준은 칠언시를 쓰고 말미에 ‘한국 윤락생 이선재韓國 淪落生 李璿在’라고 서명한 뒤 ‘해옥海玉’과 ‘이선재李璿在’ 인장을 찍었다. ‘이선재李璿在’는 그가 ‘이준李儁’으로 개명하기 전 사용하던 이름으로, 일본 망명에서 돌아온 뒤부터 이준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옥海玉’은 이준이 양주 직곡산방에서 운현궁으로 돌아온 흥선대원군을 만나고 온 뒤 이조참판 김병시金炳始를 찾아가 그의 문객이 되었을 때 김병시가 지어준 호로 전한다.

이준은 일본 망명과 체류를 통해 당시 일본 사회의 여러 인사들과 교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망명 시기의 구체적인 행적은 충분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출품작에 여러 일본 서화가들의 작품이 이준의 글씨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가 현지 문인·서화가들과 실제로 교류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준은 전문 서화가로 활동한 인물은 아니지만 한문과 서예에 익숙한 근대 지식인으로서 일본의 문인·서화가들과 작품을 함께 남겼으며, 이 첩은 그의 일본 체류기 교유 관계와 문화적 활동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