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1회 미술품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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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 007

갈물 이철경 李喆卿 1914-1989
이강혁 李康爀(1884-1964) 선생의 회갑에 올리는 글
1944년(갑신)
종이에 먹
91.5x29.1cmx8
병풍/추정 KRW 4,000,000-10,000,000
낙찰 KRW 4,000,000

출품작은 이강혁의 회갑을 맞아 이만규가 글을 짓고 이철경이 글씨를 쓴 병풍이다.

이만규는 이철경의 부친으로, 한글학자이자 교육학자였다.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서당에서 한문과 서예를 수학하다가 16세에 경성에 올라와 경성의학교에 다녔다. 졸업 후 개성에서 의사 생활을 하던 중 1913년 윤치호尹致昊의 권유로 송도중학교에서 교육활동을 하다가 1916년 경성으로 와 배화여고보 교사로 부임하였다. 그는 궁체에 바탕을 둔 한글 서예에 독보적인 실력을 갖추었던 남궁억南宮檍의 감화를 받아 한글 서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직접 한글 글씨를 쓰며 궁체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조선어학회에 가입하여 간사, 위원장을 맡으며 국어 철자법을 통일하고 보급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

이만규는 6남매 중 네 딸에게 모두 한글 서예를 가르쳤다. 특히 둘째인 이각경와 셋째인 이철경은 한글 서예에 뛰어난 재주를 보여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는데, 특히 서예를 본격적으로 한 이각경李珏卿, 이철경, 이미경李美卿은 모두 배화여고보를 다니며 한글 서예를 수련하였으며, 모두 전문학교에 진학해 자신의 전공이 따로 있었음에도 평생 한글 글씨를 놓지 않았다. 이만규는 세 자매의 호를 '봄뫼', '갈물', '꽃뜰'로 지어주었으며 '비단 땅', '비단 마음', '비단 글', '비단 글씨' 등 네 자매가 사용한 아름다운 인장 문구 또한 모두 이만규가 지어준 것으로 이는 모두 우리글을 사랑했던 이만규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들이다. 이들의 노력은 한글 궁체가 서예라는 예술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이각경은 이만규와 함께 월북하였고, 이철경은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후 배화·이화 등 여러 여학교 교사를 지냈는데, 문교부 검인정교과서 검정위원과 서예교과서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갈물한글서회'를 창설하여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며 서예가로서도 뛰어난 업적을 쌓았다.

출품작은 1944년 회갑을 맞은 이강혁을 위해 이만규가 글을 짓고, 그의 딸 이철경이 한글 궁체로 써 제작한 병풍이다.
이강혁은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포목업에 종사하며 경성금융조합장과 서울금융조합장을 역임한 인물로, 1929년 이후 경성유치원과 양로원인 경성자혜원, 빈민 구제 시설인 동화인보관을 설립·운영하는 등 사회사업가로도 활동하였다.
이철경이 이화여고보 교사로 재직하던 시기에 쓴 이 글씨는 한글학자이자 교육자였던 부친 이만규가 지은 글을 딸이 직접 궁체로 옮겨 썼다는 점에서 가족적 유대와 더불어 당대 한글 서예 계승의 면모를 함께 보여준다. 부녀가 협업한 형식과 단정하면서도 유려한 궁체의 필치는 20세기 전반 한글 서예가 예술 분야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과 그 미감을 잘 드러내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