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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품작은 대구 지역의 빼어난 경관 10곳을 그린 <대구십경도병풍>이다.
'대구십경'은 조선 전기 학자인 사가 서거정 四佳 徐居正(1420-1488)이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 10곳을 찬미한 「대구십영大丘十詠」에서 유래한다.
서거정은 외가인 경기도 임진현에서 태어나 중앙 정계를 주 무대로 활동했지만 조부와 부친의 고향인 대구를 자신의 친향으로 여기며 각별한 애정을 기울였으며 이러한 정서가 대구십영을 창작하게 된 중요한 동기라 할 수 있다. 서거정의 대구십영은 근세까지 대구지역 문인들에게 영향을 끼쳐 이후에도 대구팔경시집 등 대구지역의 명소를 노래한 지역문학 창작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조선 전기 대구 지역의 명소 10곳을 일련의 연작시로 창작하여 기록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데에서 지역문학사적인 의미가 매우 크다.
이 작품은 부드럽고 섬세한 선묘와 은은한 담채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가 드러난다. 실제 풍경을 사실적으로 옮긴 실경산수라기 보다는 실제 경치에 「대구십영」의 시적 정취를 더해 시정 넘치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각폭의 작품 상단에는 서거정의 시구를 적어 시와 그림이 어우러지는 시화일치詩畵一致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작품에는 작가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박두하인朴斗夏印' 인장과 여러방의 사구인詞句印이 찍혀있는데 이 정보만으로는 작가를 특정할 수 없어 아쉬운 점이 있다.
출품된 <대구십경도병>은 실경을 그대로 옮겨 그린 실경산수화는 아니지만, 대구 십경의 소재를 취한 현전하는 유일한 작품으로서 조선시대 대구 지역의 경관과 문학 ·회화의 결합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 이 작품을 통해 조선시대 대구 십경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어 흥미롭다.
제1폭 금호범주 琴湖泛舟
琴湖淸淺泛蘭舟 取次閑行近白鷗
盡醉月明回棹去 風流不必五湖遊
금호강 맑은 물에 돛단배 띄우고, 이리저리 한가롭게 갈매기와 어울리네.
달 아래 한껏 취해 노 저어가니, 오호에서 노는 것만이 풍류가 아니라네.
제2폭 입암조어 笠巖釣魚
煙雨涳濛澤國秋 垂綸獨坐思悠悠
纖鱗餌下知多少 不釣金鼇釣不休
안개 비 자욱한 가을날 연못에서, 낚시 드리우고 홀로 앉아 생각이 하염없네.
미끼 아래 잔고기 많은 거야 알고 있지만, 금자라 낚지 못해 멈출 수가 없다네.
제3폭 구수연운 龜岫春雲
龜岑隱隱似鼇岑 雲出無心亦有心
大地生靈方有望 可能無意作甘霖
거북 봉우리 보일락 말락 자라봉 닮았는데, 구름이 무심히 나온다 해도 뜻이 있어라.
땅 위의 생물들이 바야흐로 바라는데, 단비를 내릴 뜻이 없을 수 있겠는가.
제4폭 학루명월 鶴樓明月
一年十二度圓月 待得仲秋圓十分
更有長風箒雲去 一樓無地着纖氛
한 해에 열두 번 보름달이 뜨지만, 팔월 한가위 되어서는 한껏 더 둥그렇네
거센 바람 다시 불어와 구름을 쓸어가니, 누각엔 작은 먼지도 붙을 데가 없다네.
제5폭 남소하화
出水新荷疊小錢 花開畢竟大於船
莫言才大難爲用 要遣沈痾萬姓痊
물 위의 새 연잎 돈닢 포갠 듯하더니, 꽃이 피니 마침내 배보다 더 크다네.
너무 커서 쓰기 어렵단 말 하지를 마오, 온 백성 고질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
제6폭 북벽향림 北壁香林
古壁蒼杉玉槊長 長風不斷四時香
慇懃更着栽培力 留得淸芬共一鄕
옛 벽 푸른 측백나무 옥창같이 길고, 긴 바람 끊임없이 사시에 향기로워라
은근히 정성 모아 힘들여 가꾼다면, 맑은 향 머물러 온 고을에 가득하리라.
제7폭 동사심승 桐寺尋僧
遠上招提石逕層 靑藤白襪又烏藤
此時有興無人識 興在靑山不在僧
멀리 층 오르는 층층의 돌계단 길, 푸른 행전 흰 버선에 검은 지팡이네.
이 시절 흥겨움을 아는 이 없고, 청산에 흥이 있지 스님에게 있지 않네.
제8폭 노원송객 櫓院送客
官道年年柳色靑 短亭無數接長亭
唱盡陽關各分散 沙頭只臥雙白甁
해마다 큰 길에는 버들 빛 푸르고, 가깝고 먼 역이 수 없이 이어졌네.
이별 노래(양관곡) 다 부르고 서로 헤어질 때, 모래밭엔 흰 술병 둘만 뒹구네.
제9폭 공령적설 公嶺積雪
公山千丈倚崚層 積雪漫空沆瀣澄
知有神祠靈應在 年年三白瑞豐登
천길 팔공산 겹겹이 험준한데, 쌓인 눈 하늘 가득이 이슬처럼 맑구나.
신사에 신령님 응당 계심을 알겠거니, 해마다 상서로운 눈 내려 풍년을 기약하네.
제10폭 침산만조 砧山晩照
水自西流山盡頭 砧巒蒼翠屬淸秋
晩風何處舂聲急 一任斜陽擣客愁
물은 서쪽으로 흘러 산머리에 이르고, 침산 푸르러서 맑은 가을빛 띠고 있네
저녁 바람 부는데 어디서 방아 소리 급한가, 저물녘 나그네 시름 저 방아로 찧어
사가정 서거정 四佳亭 徐居正, 『사가시집 四佳詩集』보유3, '대구십영 大丘十詠' :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에 수록